스타트업 적응기 #23 – 성장통

한동안 잠잠했었습니다.

데스밸리 지나고나서, 서비스 매출은 아니지만 생존하기 위한 외주 프로젝트처럼 관계사의 업무를 대행하면서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하다보니 서비스를 진화시키는 일보다 다른 일들이 바빠서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재무적으로 안정되다보니 당장 필요한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할 수 있었고 어느덧 회사 규모도 꽤 커졌습니다.

예전에 스타트업에서 가장 빨리 해고해야 할 직원은 초기 멤버입니다 라는 글을 읽었을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런 저런 밋업을 쫓아다니다보니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초기 과정은 아주 판박이처럼 똑같았습니다. 뒤돌아보니 저희도 다른 스타트업들과 똑같은 시행착오를 해서 오늘에 이르렀더군요. 뭐 직접적인 해고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초기 멤버 중에서는 대부분이 다 퇴사한 상태이고 현재 구성원들은 2기 멤버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제목은 Financing이지만 스타트업의 흥망성쇄 그래프로 해석해도…

현시점에서 제가 궁금한 점은 지난 시행착오가 똑같았던 만큼 앞으로 발생하는 현상도 똑같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을 했는데, 공개된 자료로는 초기에 실패했던 스토리 또는 성공한 이후에 결과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회사가 재무적 안정성에 기반한 인력 확충으로 성장기를 겪는 와중에 발생하는 이슈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고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아직 본격적인 성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록을 해봅니다.

성장기에 새로운 인력이 확충되면서 가장 먼저 발생하는 문제는 신규로 합류한 멤버의 의욕과 기존 서비스의 레거시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꾸냐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의욕을 가지고 합류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서 이런 저런 제안을 하는데 실제로 제가 해줄 수 있는 대부분의 말은.. ‘안돼요’, ‘해봤어요’, ‘못해요’ 였었습니다.

큰 회사처럼 입사 후 몇개월간 OJT를 하고 소프트랜딩을 하는 기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을 충원하는 시점이 버티고 버티다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이다 보니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충돌이 발생하고 신규 멤버의 의욕을 꺾어버리는 결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실패할게 뻔하고 시간 낭비가 명백한 레거시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어려운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고, 만약 제가 마음의 여유가 있고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시간을 가지고 설득하고 알려주고 작은 시행착오를 해볼 수 있도록 했을 것 같은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생존을 위해서 할 수 밖에 없는 관계사 업무에 치이고 그 와중에 독자 서비스를 진화시켜야 하는 이중고를 겪다보니 작은 실패나 시행착오에 마음이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인원을 충원했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못했던 시도를 더 하다보면 일은 더 많이 늘어나고 모든 사람들이 일에 치여서 살다보면 초심을 잃고 예민해질 수 밖에 없고 구성원들간의 충돌이 잦아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또한 충원하는 과정에서 인맥으로 사람을 찾다보면 사실이던 아니던 합류 이후에 소위 친분에 의한 라인이나 파벌로 의심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밖에 없고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고 라인과 파벌을 막으려고 해도 어느 시점부터는 현실로 인정하고 문제를 완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지금 회사에 합류할때 나름 꿈과 희망이 있었는데 데스밸리를 지나면서 생존이 절박해졌고 그 와중에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다보니 어느 순간 초심을 잃었다는 것을 깨닳았습니다.

지금 겪는 문제가 정말로 ‘성장통’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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