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새벽을 불태웠던 장애가 사라지고 조직이 안정화되니 자연스레 회사의 방향이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 중에 달성하고자 했던 내부 목표를 작년 말에 일찌감치 달성하고 나니 가뜩이나 맨땅에서 시작해서 할 일이 많은 스타트업 개발조직에게는 추가로 할 일들이 재앙 수준으로 다가 왔습니다.
공격을 위한 개발을 진행해야 하는데 운영 업무로 인해서 개발 리소스가 분산되면서 일정이 계속 지연되는 문제가 있어서 회사 내부에 운영 업무를 당분간 안하겠다고 극단적인 선언을 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운영 업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자동화가 덜 된 백오피스로 인해서 일부를 수작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사소한 데이터 추출 조차도 개발 공수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에서는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면 외주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거나 불가피한 상황을 공론화해서 사업 쪽이 기다리게 하거나 운영 업무를 기존 관리 조직으로 이관하거나 다른 대안을 경영진이 결정하도록 보고 하고 기다리거나 하는 수동적인 대응이 중간 관리자로서 할 수 있는 차선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에서는 수익이나 생존에 대한 걱정이 개발 조직에는 절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사와의 계약 지연이나 매출이나 사업적인 부분을 개발에 반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투자받은 금액으로 조직이 장기간 생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스스로 돈을 벌어서 생존을 해야 하는 절박함이 가장 먼저 다가 왔습니다.
안정(?)적인 회사를 떠나서 지금 회사에 합류하기로 결정할 때, 지분도 없고 스톡옵션도 없고 오히려 연봉을 대폭 삭감하면서도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것은 다녔던 회사들에서 이런 저런 한계에 부딪히면서 느낀 좌절을 극복하고 내가 꿈꾸는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창출과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문구는 제가 이런 저런 회사를 다니면서 경영진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저 문구로 인해서 회사에서 사람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고 모든 편법과 불법이 합리화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스타트업에 합류하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돈벌자‘입니다. 얼마 전에는 저 스스로도 놀랐는데, 개발자와 논쟁을 하면서 ‘당장 돈을 벌 수 있으면 사소한 불법 요소는 감안하지 말자. 돈 못벌어서 망한 뒤에 우리는 비록 망했지만 법을 지키고 우아하게 사업했다라고 말하면 참으로 자랑스럽겠다’라는 말을 제가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나중에 불법적인 정책이 아니라고 확인이 되었지만 제가 변했다는 것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저로 인해서 개발 과정에서 아름다운(?) 아키텍쳐가 자주 무시되고, 말도 안되는 일정에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사업을 위한 땜빵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십수년간 개발을 해온 개발을 잘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개발해야 하는 서비스 개인화와 타케팅 푸시를 반나절만에 개발하도록 하고, 땜빵으로 1차 개발된 상태에서 살을 붙여서 재활용하도록 요구하다가 서버 개발자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꿈꿔왔던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당장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는 스타트업의 개발 조직 책임자는 개발의 원칙을 무시하는 변절자가 되었습니다.